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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소설 서평 /한국 현대 소설

옆집 여자 - 하성란

옆집여자』는 1997년에서 1999년까지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깃발」, 「곰팡이꽃」, 「즐거운 소풍」 등 10편의 단편소설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표제작인 「옆집여자」나 제3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곰팡이꽃」만을 성공작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옆집여자』 수록 단편들은 고른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수록작품들 중 어떤 것을 읽어도 문장 한 줄 한 줄이 촘촘하게 교직되면서 빈틈없는 플롯을 만들어 내고 긴박감 도는 사건을 빚어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옆집여자」처럼 화자가 존대법을 취한 것이든 「촛농날개」처럼 〈너〉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이든 하성란 소설 속의 문장들은 정확성과 정밀성 그리고 간결성을 지켜 내고 있다. 하성란은 소설에 있어 작은 것이 탄탄하면 큰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형식이 잘 갖추어지면 의식이 알맞게 형성되는 것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하성란의 실제적인 창작능력이 이러한 인식을 잘 따라잡고 있는지는 아직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하성란의 소설들은 가시적인 행위나 상황의 묘사에 역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묘사의 대상인 행위나 상황은 까다롭다고 할 정도로 엄선하는 편이다. 묘사가 아무리 치밀하다고 하더라도 긴요하지 않은 대상을 잡으면 자연 플롯도 무너지고 애초의 창작의도도 뒤틀리게 된다. 대상을 엄밀하게 추려내는 태도도 태도려니와 대상에 얽힌 기본지식의 확보도 작가 특유의 묘사정신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건(「옆집여자」), 전기, 자동차 영업소(「깃발」), 배나무 과수원(「악몽」), 통닭튀김 조리방법(「즐거운 소풍」), 체조, 헹글라이딩(「촛농날개」), 마네킹, 백화점 매장 , 마술(「당신의 백미러」), 광고회사(「치약」), 생선회 뜨는 방법(「양파」) 등에 대한 전문적이거나 남다른 지식은 각 작품들 속에 그냥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지식은 작품에 따라 드러내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천의무봉의 수준으로 작품의 다른 요소와 잘 합성되어야 한다. 실제로 하성란의 작품들은 중심사건의 성격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여러 방면의 전문지식이 증진시켜 주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이제부터는 작가의 탐구욕이 좀 더 큰 것, 좀더 본질적인 것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옆집여자』의 수록작품들은 소재의 다양성을 보여 주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깃발」, 「촛농날개」, 「당신의 백미러」, 「곰팡이꽃」, 「치약」, 「양파」 등은 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예사롭지 않은 접근과정을 다룬 것으로 묶을 수 있고, 「악몽」, 「촛농날개」, 「당신의 백미러」, 「치약」, 「양파」 등은 교통사고 모티프의 설정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악몽」, 「즐거운 소풍」, 「양파」 등은 모두 살인 모티프를 취하고 있다. 이 이외의 반복 모티프로 「옆집여자」, 「당신의 백미러」 등이 보여 주는 절도 모티프가 있다. 크게 보면 그의 소설들 대부분은 현대인들 사이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성란의 소설에서 나타난 사고들은 인간의 기본욕망을 근인으로 삼고 있으나 숙명론자들처럼 사고가 난 것으로써 소설의 비극적 결말을 맺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성란의 소설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에 숙제를 던져 주는 식의 열린 결말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작가는 최소한의 암시도 주지 않는다. 이러한 결말처리 방법에 집착하다 보면 혹 무책임한 작가로 비칠 수도 있다. 소설의 결말은 단순한 끝부분이 아니라 작품 전체 구조의 독법을 제시해 주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즐거운 소풍」, 「치약」은 사건의 결과를 좀 더 많이 열어 보이는 식으로 처리되었어야 했다. 〈마무리가 좋지 않으면 전체가 나빠진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결말을 불안하게 처리한 것도 있다.

이제 작중인물의 명명법에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 구체적인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쓰지 않고 〈여자〉, 〈남자〉, 〈사내〉 같은 식으로 주인공을 호명하는 방법을 더 이상 반복하는 것은 그 동안 가꾸어 놓은 참신성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상에 지적한 몇 가지 문제점들은 하성란의 〈큰〉 작가로서의 가능성 앞에서는 사소한 것으로 비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