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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소설 서평 /한국 현대 소설

엘리베이터 - 송경아


모든 이야기는 한여름밤의 악몽과도 같다’라는 배수아 소설의 외침은 다른 각도에서 송경아의 소설이 지닌 인식론적 믿음과도 상통한다. 배수아의 소설이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대중문화적 감수성을 무차별하게 뿜어내고 있다면, 송경아의 소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소설’을 지향하는 의식적인 고안품이다. 소설이 환상과 현실을 교란하는 언어적 허구물이라는 것, 작가 역시 실존적이고 체험적인 삶의 진정성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허구적인 창조물의 소유자라는 점은 송경아 소설에서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주제이다.

그렇게 보면, 신세대로 지칭되는 젊은 작가들 중에서 이렇듯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신념이 작품의 전면에 압도적으로 드러나는 예도 드문 편이다. 추상적 관념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것을 가상적 알레고리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송경아가 즐겨 취하는 구성 방식이다. 첫 소설집인 『성교가 두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학적 고찰 중 사례 연구 부분 인용』이 비교적 발랄하면서도 즐거운 유희의 형식으로 이런 관념적 주제의 성격을 암시했다면, 두번째 소설집인 『책』과 장편소설인 『아기 찾기』는 가상적 허구물로서의 성격을 좀더 극단화한다. 이 과정의 연장선에 이번 소설집인 『엘리베이터』가 놓여 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드러나지만 ‘고안된 가상물’로서의 소설이 피할 수 없는 난관은, 작가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플롯을 지배할 때 나타난다. 송경아의 소설을 읽는 데서 간혹 접하게 되는 난독(難讀)의 고통도 이와 관련 있다. 모호한 주제 아래 각각 개별화되는 불분명한 상징들, 갑작스럽게 대두되는 서술자의 해설적인 음성, 관념의 직접적인 서술 등이 야기하는 소통상의 문제점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엘리베이터』에 실린 단편들의 상당수는 『책』을 상재할 무렵 창작된 것으로 『책』의 주제들과 일정 부분 겹쳐 있다. 굳이 분별하자면, 『책』의 주제는 언어와 현실의 관계를 묻는 것으로 압축되며 『엘리베이터』는 세기말 사회를 향한 묵시록적이고도 신화적인 해석을 주요한 내용으로 놓고 있다. 문명 세계의 암울한 전망은 송경아의 소설 곳곳에서 예고되는 것들이다. 세계는 “모두가 자신의 갈망에 눈이 멀어, 이 안에서는 아무도 볼 수가 없”는 “엘리베이터”와도 같다. “삶에는 전락만이, 거대한 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곳으로 돌진하는 가속도만이 존재”한다.(「엘리베이터」) 작가는 인간 주체가 철저히 객체화되고 ‘가속도’만이 주인공이 되는 현실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송경아의 소설이 보여주는 세기말적 인식은 이미 『책』에 상재된 「바리―길 위에서」에서 나타난 바 있다. 네트워크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초인인 ‘바리’가 길을 떠난다는 스토리를 통해 거대한 정보화사회의 비극성을 이야기하였던 전작에 이어, 『엘리베이터』에서는 「바리―불꽃」 「바리―동수자」 「바리―돌아오다」의 연작을 통해 바리 이야기가 다시 패러디되고 있다. 설화 속의 바리가 고난을 거쳐 아버지를 살리는 약을 들고 명예롭게 귀환한 것과 달리 소설 속의 바리는 네트워크의 불치병을 치료할 약을 갖지 못한 채 돌아온다.

단지 바리가 확인한 것은 “세계의 혼란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 불라국의 인간들은 누구도 이 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리가 먼길을 통해서 깨우친 것은 ‘희생제가 없는 문명은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바치기 힘든 고귀한 제물을 봉헌하고 한 생명을 포기하는’ ‘희생제의’로써 문명의 지속이 가능함을 깨닫고 절망하지만, 미약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다시금 길을 떠난다.

설화의 패러디를 통해 전달된 묵시록적 서사는 코드화된 일상 욕망의 비극성을 암시한다. 송경아는 기능적 존재로서의 개인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무게를 두면서, 세계가 하나의 견고한 시스템이고 인간이 그 속에서 철저하게 기능적인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거듭 천명한다. 그것은 매우 절망적인 디스토피아의 사유이다. 기능화된 세계의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예 ‘체계’를 초월한 신적인 존재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바리 설화 패러디의 또다른 암시이기도 하다. 「집」에서도 형상화되듯이 세계는 포성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다름없으며,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온전하게 보호하는 참다운 ‘집’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는 자신이 주체임을 망각하고 불어넣어진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유기하게 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강렬한 전언이다. 관리되는 사회의 부속품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 단편적이나마 가족과 학교 등의 제도적 압박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학기」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가 그 예이다. 그러나 송경아의 소설에 나타난 문명비판적 알레고리는 ‘작가’라는 초월적 기의와 충돌함으로써 플롯의 정교함을 상실하는 예도 빈번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단편들에서는 장은수가 해설에서 지적한 대로 작가가 독자와의 소통을 원하면서 지나치게 서술적으로 개입해 들어오는, 일종의 타협지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언어화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해야 하는 욕망’이 부른 강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묻는 「호랑이」, 죽음의 문제를 묻는 「메멘토 모리」, 일상의 음험함을 묻는 「가까운 곳(近處)」, 세기말적 문명의 몰락과 희생제의를 이야기하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등 각 작품에서 표면적인 주제는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주제와 플롯이 효과적으로 상응하지 못할 때, 애매한 결말이 유도될 수밖에 없다. 「투명인간」과 「정열」이 별다른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못한 채 모호한 결말을 맺는 것이나, 「가까운 곳(近處)」과 「메멘토 모리」의 계몽적인 작가 선언이 그 예이다. 추상적 관념어의 직접적 대입이 알레고리의 실패를 부르고, 이럴 경우 작품의 주제는 최초의 의도와 달리 저자를 자기 텍스트의 원천이자 의미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저자관에 강박된다.

여하튼 송경아에게 계속 열려 있는 길은 리얼리스틱한 방식을 취하든 허구적인 방식을 취하든, 정교한 알레고리의 구축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소설적 과제로 천명하였던 ‘상상 공간의 독자성’(『아기 찾기』)에 대한 탐색을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그것은 같은 층위에서 동세대 작가들과 공유되는 고민과 실험이기도 하다. 휴머니티의 허위적 실존의식에 대한 야유와 풍자를 거듭하는 백민석의 알레고리 전략이 당분간 잔혹극에 대한 리얼리즘적 묘사의 방식으로 선회한 예(「목화밭」 「파산세일」)나, 김영하가 정교한 재현 묘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허구의 가능성을 증폭시키려는 시도(「비상구」)를 볼 때, 송경아의 소설적 행보는 여러 모로 주목된다. 현실과 허구, 실재와 상상의 관계, 언어와 삶에 대한 강박적인 설명을 넘어서 작가 자신이 지향하듯이 “현실과 관계가 있으면서도 현실과 다른 층위를 가지는 공간”(『아기 찾기』)이 소설 내부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조롭고 안전한 생활을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 있는 거대한 균열”(「가까운 곳(近處)」)로서의 일상성에 대한 통찰을 지향하는 작가의 사명 의식과도 맞물린 문제이다.

백지연

일상성의 신화와 이야기의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