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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소설 서평 /한국 현대 소설

산타페로 가는 사람 - 김승희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이상(李箱)이 올라갔던 ‘미쯔꼬시’ 옥상에서 다시 날기를 시도하는 김승희(金勝熙)는 날개의 무게조차 줄여서 가벼워지기를 원한다. 하기에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날개를 젖게 하거나 부러뜨리는 ‘중력’이다. “나에게 매달리려는 것들, 나를 목매다는 것들, 내가 어쩔 수 없이 목매달고 싶은 것들”을 뿌리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모든 집착이나 굴레는 만족이나 자유를 땅으로 떨어뜨리면서 구르면 구를수록 더 커지는 눈덩이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김승희의 첫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씰피드 콤플렉스’나 ‘뫼비우스 씬드롬’을 앓고 있다. 발레극 「라 씰피드」에 기원을 둔 씰피드 콤플렉스는 날개가 달린 정령(精靈) 씰피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씰피드 자체가 “공기처럼 가벼운 자유주의”나 “환상적인 낭만주의”의 화신이기 때문이다.(「호랑이 젖꼭지」) 하지만 씰피드가 인간과의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날개를 잃어버린 채 죽었듯이 인간은 모두 미소를 잃어버려서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는 ‘뫼비우스 씬드롬’에 걸려 있다. 표정을 짓는 근육에 고장이 나서 얼굴에 아무 표정을 만들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회색고래 바다여행」)

이와 연관되어 여성의 젖가슴이 심각한 추락지역으로 그려지고 있다. 「호랑이 젖꼭지」에서 ‘나’가 북한산의 젖꼭지봉을 보고 연상하게 되는 어머니의 젖가슴은 동굴 속에 갇혀 있었던 곰의 모습을 닮았다. 인습의 감옥 안에 살면서도 “참고, 견디고, 어디까지나 운명의 동굴을 지키는 것”을 유일한 토템으로 삼는 것이 그런 가슴을 지닌 어머니들의 삶이다. 「회색고래 바다여행」에서 햄버거 가게 맥도날드의 로고 ‘M’자 간판을 보고 광주민중항쟁에서 가슴 자상(刺傷)을 입고 죽은 희생자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역사가 지워준 무거운 짐 때문이다. 또한 「聖 브래지어, 1994년 7월 9일」에서는 여성의 가슴을 ‘브래지어’라는 정해진 규격과 원하는 틀에 얽매어두려는 사회제도가 비판되고 있다. 이때 김승희의 소설에서 여성의 가슴은 가볍게 날 수 없는 여성들의 무거운 몸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때문에 김승희는 곰의 인내성ㆍ식물성ㆍ수동성이 아닌 호랑이의 야성성ㆍ동물성ㆍ적극성에 눈을 주게 된다. 여성들이 날개를 상실해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잃어버렸던 본능을 되찾는 것뿐이다. 그래서 특히 호랑이의 원초적 생명력을 욕망하게 된다. 그런 호랑이의 모유를 공급받음으로써 무의식 속에 억눌려 있던 “자주 포효하라”라는 말을 끄집어내고 싶은 것이다.
또한 김승희는 이런 잠재된 호랑이성의 현실태인 ‘아나바스 스칸덴스’라는 물고기가 되려고도 한다. 물에서 살아야 한다는 자연법칙을 벗어나 자신의 골 속에 물을 저축해 육지에서도 일주일간이나 살 수 있는 그 물고기 같은 적응력과 힘을 지니고 싶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호랑이의 여성성은 인간학으로 확대ㆍ재생산된다.(「아나바스 스칸덴스」)
이러한 동물들로 변신하려는 인간들은 “인간의 악몽을 받아 먹으려고 불행한 인간의 잠 속을 배회한다”는 ‘맥’이라는 전설적인 동물을 퇴치해야만 그 뜻을 이룰 수 있다.(「아마도」) 결국 김승희는 이 소설집에서 공격과 저항, 질주와 자유를 구가하는 동물성의 수사학을 그려낸 것이다. 이때의 동물성은 ‘초월’이라는 마음의 근육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정신적 비타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동물성은 위험하고 불온하다는 이유로 억압당해왔다. 때문에 이런 ‘야성의 지하세계’는 곧 ‘표준말’이나 ‘오른손’과 대비되는 ‘방언’이나 ‘왼손’을 사용하는 사회적 게토(ghetto)로 취급되었다. 정해진 규칙에 의해 가족이나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표준말이나 오른손을 사용하는 세계라면, 그런 모습을 부정하면서 어두운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원시신화를 따르는 것이 바로 방언이나 왼손을 사용하는 세계이다. 김승희는 그곳에서 씰피드의 가벼운 날갯짓을 본다.
이런 이상공간을 좀더 구체화한 것이 바로 ‘산타페’이거나 ‘아마도’이다. 산타페는 20세기의 문명이 오염시키지 않은 순수 원초의 공간이다.(「산타페로 가는 사람」) 아마도는 허균의 율도국, 예이쯔의 이니스프리,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단 1조의 헌법만 있는 섬 트리스탄 다 쿠나, 피터팬이 사는 네버랜드 등의 총칭이다. “아마도 세상의 어디에도 있을 수 있지만 아마도 세상의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유토피아가 바로 그곳이다. 끝없이 유예되기에 다시 추구하게 되는 약속의 땅인 것이다.

김승희는 사회적 무게는 덜고 실존적 무게는 더하면서 그런 유토피아를 향해 떠난다. 지금 이곳에는 없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찾아 떠나가는 여행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꿈이나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현실이나 절망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지독한 아이러니스트이다. 그리고 ‘부재를 통한 존재증명’이라는 힘겨운 전투를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자유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다. “한이 있는 곳에 집이 있”고, “뿌리 있는 것은 결코 완전히 흔들리지 않”으며, “계단이 부서진 곳에서만 날개가 시작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힘들게 떠돌아다니는, 그래서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표류에 대한 기록이 바로 소설이라는 것을 아는 작가이다. 때문에 지금도 그녀는 회색고래가 되어 어둠의 바다를 여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