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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평심 - 박상륭 박상륭 소설은 매우 난해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 수 없다. 나만 무식한 독자라서 그런 줄로 생각했지만, 박상륭 소설에 대해서 극도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 평론가들까지도 그의 소설을 잘 모른다고 말하니 박상륭 소설은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소설에 대해서, 비판의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고 그 반대로 최상급의 찬사만 들리므로 나는 불안하다. 그래서 읽다가 중도 포기한 『칠조어론』과 『죽음의 한 연구』에 대한 불쾌한 독서 경험을 뒤로하고 단편집인 『평심』을 마음잡고 읽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평심』마저도 나의 이해력과 인내력을 넘어서는 책이다. 나는 표제작 「평심」과 「로이가 산 한 삶」 그리고 「왈튼 씨 부인이 죽은 한 죽음」을 억지로 읽고는 책을.. 더보기
푸른나무의 기억 - 김형경 손가락으로 퉁기면 흔들리는 위태로움을 보이다가 여지없이 자신의자리로 정확하게 돌아오는, 말랑말랑해서 건드리면 쉽게 형체가 이그러지 질 것 같지만 안으로 굳어진 내성으로 단단하게 자신을 조이고 있는 푸딩이 있다 김형경의 눈에 비친 세상은 쉽사리 변형도지 않는 끈적끈적한 내성으로 얽혀진 푸딩이다. 그 내성으로 인해서 안에 있는 어떤 내용물도 바깥으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일상적인, 아무렇지도 않은, 그래서 여전히 자연스러운 세상, 흔들어도 형체가 변하지 않는 세상, 친숙하고 일상적인 실루엣, 그 틈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담배연기, 김형경 소설은 이런 몇 가지 이미지가 중층적으로 짜여진소설이다.자연스럽게 읽히지만 읽고 나면 섬뜩한 느낌을 주는, 그래서 내 안에 키우고 잇는 머슴, 덩그렇게 남은 자기 육체의.. 더보기
초원의 향기 - 이인화 이인화(1966~ )는 대구에서 태어난다. 그의 본명은 류철균이다.이른 바 '386 세대'에 드는 그는 서울 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그는 1988년 『문학과 사회』에「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라는 평론을 발표하며 비평가로 먼저 등단한다. 1992년『작가세계』의 제1회 '작가 세계 문학상'에 장편소설『내가 누구인지 말하 수 있는자는 누구인가』가 당선하면서 그는 소설가를 겸하게 된다. 분석력을 바탕으로 특히 시를 다룬 평론에서 섬세한 독법을 보여준, 젊고 명민한 평론가 '류철균'이 소설가 '이인화'로 나타난 것이다. 소설가로서 그는 『영원한 제국』(1993),『인간의 길』(1997),『초원의향기』(1998)같은.. 더보기
청춘의 동쪽 - 박상우 보들레르의 산문 중에 「가난뱅이를 때려라」라는 글이 있다. 그 글 중간부분에는 소크라테스와 자신에게 악마라는 존재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간략하지만 시니컬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소크라테스의 악마가 금지하고 경고하고 막기 위해서만 나타난다면 자신의 악마는 몸소 충고하고 암시하고 설득하기 위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악마는 굉장한 확신에 차 있는 악마이며 행동하는, 혹은 투쟁하는 악마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마는 라고 속삭인다고 덧붙이면서 악마라는 존재의 상징적 시니피에를 흐린다. 이것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악마라는 기본적인 인식과도 차이가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악마라는 개념을 뒤집어놓은 좋은 본보기이다. 어쩌면 문학은 기본적으로 이.. 더보기
첫사랑 - 이순원 어머니, 고향, 고향에서 쓰던 입말, 최초의 어떤 냄새, 빛 , 소리, 그리고 길들여진 음식 등은 원초적 경험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항상성을 이루는 갖가지 것이다. 탯줄을 끊듯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 그것은 저 어둡고 깊은 인간의 심리 속에서 '무의식적인 이미지의 결합망'으로 자리잡고 불가해하게 우리의 운명을 주조한다. 유동과변전이 많은 삶을 살아야 하는 실존적 조건 속에서 놓인 현대인들은 흔히 이런 항상성을 손상당한 채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그것을 잃어 버리고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다. 이순원의 『첫사랑』은「우리의 어린 여인」,「한때 그것이 나였던 어느 시절」,「친구의 아내」,「씩씩하여 아름다운 길들」등 네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은 "입학해서 졸업할 때 까지.. 더보기
오남리 이야기 -구효서 평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구효서의 「오남리 이야기」는 더없이 행복한 독서 공간이다. 이미 열한 살짜리 꼬마 강병태의 도저한 입심을 빌려 한내리 이야기(「라디오 라디오」, 1995, 고려원)를 들려주었던 구효서가 이번에는 십여 권의 소설을 낸 바 있는 사십대 소설가로서 직접 평상에 앉아 사람을 불러 모았다. 갇힌 동료를 위해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는 심사로 쓰기 시작한 편지인데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은 그의 전재산을 영치금으로 준 셈이다. 편지는 수취인 한 사람을 위한 글이니 독자는 넌지시 등 돌리고 앉은 자세로 들어야겠지만 엿듣고 훔쳐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은 심리학의 기초에 속한다. 또한 문학의 기초인 「시학」에서 실제로 시체를 보면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예술적으.. 더보기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 - 김승희 이 소설은 미국 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는 여교수의 방랑기이다. 주인공 미랑은 자신의 삶이 순례와 방랑 중에서 어느 쪽인지 자문하지만 라는 작가의 말에 비춰본다면 작가는 미랑의 방랑기가 만행록쯤으로 읽혀지길 바라는 것 같다. 방랑이든 만행이든 아무튼 여교수의 떠돎의 원인(遠因)은 출생의 비밀, 실연일 테고 근인(近因)은 국내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모가 누구인지, 자기 피를 누구로부터 받은 것인지 몰라 고민하는 소녀, 한 남자로부터 수혈을 받고 신생의 기쁨과 더불어 사랑에 빠진 여대생 등등 이런 설정은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줄거리이다. 또한 권위적이고 구태의연한 대학 이사장과의 면접 장면, 그리고 재력과 권력을 쥔 아버지를 둔 다른 여자 후보에게 밀려나 세상 밖으로 흘러간 이야기도.. 더보기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 성석제 성석제의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의 주도적인 서사원리는 사물의 핵심, 구체적인 가치, 독특성, 비교불가 능의 성질들을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도려내는 상투화된 표현(formulaic expression)에 대한 전복의지이다. 성석제의 상 투어에 대한 부정은 집요하다. 오랜만에 해후한 유부남과 유부녀의 그야말로 통속적인 연애담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내면적 가치 없이 시류를 따라가는 현대인과 그러한 생활세계에 담을 싼 엄숙한 문학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는「통속」, “너도 꼭 너 같은 자 식을 낳아서 나처럼 고생을 해봐야 한다. 그때가 되면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등 상투적인 표현으로 일관하는 아버지를 조롱하는 (그러면서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더보기
자전거 도둑 - 김소진 자전거 도둑』을 읽는 일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흥미롭다. 아니 흥미롭다기보다는 긴장된다. 작가는 『장석조네 사람들 』에 붙인 서문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해야 할지 겁이난다. 누군가 실패한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 그때 내가 매달린 최후의 보루는 무엇일까. 글세 아마 아버지가 아닐까. 이 아버지 이야기에 해당되는 작품이 「첫 눈」이다. 어린 소녀인 '내'가 이봉학이란 인물을 관찰하고 있다. 그는 거친 성격이지만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곧잘 도와준다. 그는 취로사업 임금으로 받은 변질된 밀까루 대해 항의하다 억울하게 주동자로 몰렸고 아버지는 형사들의 호통 때문에 무기력하게도 이봉학의 범행의 증인이 되어 버린다. 이제 이봉학이 출소하여 돌아온다."연장 주머니에서 빠루같이 생긴 .. 더보기
플라스틱 섹스 - 이남희 1.기억을 통한 자기치유 이남희의 새로운 소설집인 『플라스틱 섹스』에는 작가 개인의 다양한 성향을 엿볼수 있는 기록들이 조각조각 박혀 있다. 이 소설집에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과 불안하고도 희망적인 미래의 꿈이 동시에 들끓고 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지난 연대에 대한 쓸쓸한 회오를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지난 시절이 헛되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단호한 음성이 들린다 작가는 지난 연대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못한 약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돌아본다. 동시에 그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변화한 세태풍속을 기자적인 감각으로 스케치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일상이 암시하는 절망과 어두움, 희망과 가능성을 동시에 꿰뚫어보려는 이남희의 소설적 의도를 고려할 때 ,『플라스틱 섹스』에 실린 단편들은 두 가지의 주제로 .. 더보기